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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교」 우리 세대(世代)를 위한 사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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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교」 우리 세대(世代)를 위한 사명감

세계사를 돌아보면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라는 개념이 점점 희박해지고 개인이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을 봅니다. 예를 들어, 미국 인디언들은 일찍부터 토지공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토지는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토지공개념을 넘어 토지를 개인의 소유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유럽인들의 탐욕과 맞물려 선진물품과 토지를 거래하기 시작하였고, 개인화가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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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최근까지 촌락 단위의 공동생활을 영위하던 아마존이나 아프리카의 작은 부족원들도 소유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도 인심 좋은 ‘공짜’ 대접을 받기 어려워졌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철저하게 개인화가 진행된 나머지 몇십 년씩 같은 교회나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경우가 드물어졌습니다. 기독교의 통계를 보아도 이사 등의 이유를 포함하여 한 사람이 평생 일곱 교회 이상을 옮겨 다닌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런 세태는 ‘신앙은 신과 개인의 일대일의 만남이며, 구원 또한 개인의 신앙고백에 따라 받는 것’이라는 믿음이 강조된 결과입니다. 종교개혁 이후 이런 개념이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앙고백이 개인적이라고 해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개인화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더욱더 우리가 머무는 시대와 환경,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개인의 잘못을 공동체의 책임으로 묻는 경우가 많이 나옵니다. 구약성경에 ‘아간’이라는 한 사람의 잘못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로 많은 사람이 죽고, 전쟁에서 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인화된 오늘의 관점에서는 이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진리입니다. 개인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시편 95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한 세대의 사람들 전체를 싫어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하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시편 95:9-11)

 

사실 이 세대는 가장 큰 복을 받은 세대였습니다. ‘모세의 기적’이라고 알려진,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서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탈출한 대탈출(Exodus)의 세대입니다. 그런데 이들 세대 전체가 하나님의 근심이 되었고, 결국 세대원 모두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다 죽은 후에야 그다음 세대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들의 죄는 ’출애굽’이라는 큰 복을 받았어도 하나님을 “시험하고 조사“한 죄입니다. 

 

이런 말씀을 볼 때는 섬뜩해질 때가 많습니다. 오늘의 세대, 특히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오늘의 주류 세대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복을 받은 세대입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세대에 비견(比肩)될 만한 복된 세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세대는 지금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요? 혹시 하나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근심이 되는 세대는 아닌가요?

 

나 하나 살기도 각박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어려울 때 일수록 공동체를 돌아보는 사람이 필요한 법입니다. 우리 세대, 우리의 공동체를 위해 염려하고, 희생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내가 바로 이 세대를 대표하고 있다’라는 책임감과, ’이 일을 위해 내가 태어났다‘라는 사명감을 생각해 보는 요즘이 되면 좋겠습니다. ☀



인천대교 기사로고.jpg